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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_질문이 있을때는 독서하기

책 리뷰⎜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점에서 눈길을 여러 차례 끌었던 책이지만, 공유 오피스에서 우연히 재회하고 나서야 정독을 마치게 되었다.

 

다른 분들의 서평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온 평가 중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은 중반부까지 다소 지루할 수 있으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게 되면 앞부분 내용들이 후반부에서 딱 정리가 되면서 하나의 주제로 향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 오래 걸려서 얻은 정보는 더 오래 남는 경험을 해오면서, 오히려 앞부분의 지루함도 기대감을 더 만들어 냈다. 

 

이 책처럼 오래걸리더라도 긴 여운과 오래 기억될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화자인 룰루 밀러는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라는 과학자 아버지의 말씀에 낙심하다가, 인간이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열광적인 우생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를 파헤치게 된다. 

숨어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몰두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상냥했던 소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인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빈민, 술꾼, 바보, 도덕적 타락자는 "부적합"이라는 자신이 세운 범주 안에 밀어넣고, 이들을 몰살시켜야 인류가 더 평화롭고 발전할 수 있다는 우생학적 관념으로 타락해 버렸다.

당시에 "부적합"자로 취급받은 여성들은 수용소로 보내지고 생식기를 들어내는 수술을 강행받았는데, 수술을 받게 된 '애나'와 애나가 곁에서 보호해 준 덕에 수술을 면한 '메리'를 만나 인터뷰하게 된다.

 

메리는 애나 덕분에 남편을 만나고 애도 낳게 되고, 애나는 한결같이 메리 곁을 지키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데이비드가 "부적합"하다는 판단한 사람들이 끈끈하게 서로를 받쳐주고, 새로운 생명을 이끌어내는 위대한 모습을 보고, 사람은 그 어떤 기준으로도 적합하고 부적합하다고 판단될 수 없으며, 각자 모두 쓰임이 있고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나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편리를 위해 세워진 기준을 항상 의심하고, 그어진 선들 너머를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라고 한다. 

 

'편견을 갖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하자. 모두가 소중하다'는 마음을 심오하게 다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당장 오늘 아침 퉁명스럽게 받은 아빠와의 전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이 세상을 따뜻하고 빛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늘 당신 곁에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도 함께 잊지 말기를.

 

 

 

 

 

 

 

 

115p, 내가 이 연극의 감독이라면 무대 디자이너에게 조금 살살하라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받아들이자. 이것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혼돈이 지배한다는 것.

 

 

187p, 혼돈이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기온 급변, 경쟁자, 약탈자, 해충의 침략 등 가장 강력한 형태의 타격을 가해올 때도 그 종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다윈은 무엇을 꼽았을까? 바로 변이다. 행동과 신체의 특징에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에 생긴 변이 말이다.

 

 

226p,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내가 우생학자들에 대해 그토록 격노하는 이유다. 그들은 이런 그물망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애나와 메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신들이 받은 빛을 더욱 환하게 반사할 수 있는 이 실질적인 방식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중요하다는 말. - 중략 -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중략 -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게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264p,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중략-


이 폭풍우는 짜증스럽기만 한 일일까? 어쩌면 그것은 거리를 혼자 차지할 수 있는 기회, 온몸을 빗물에 적셔볼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일 수도 있다. -중략-


늘 거기 있었지만 어째선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 그러면 세계는 조금 더 벌어지며 열린다. 그리고 나도 다윈이 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긴다. 우리의 가정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 관해 궁금해해야 한다는 것을. -중략-


어쩌면 당신의 꿈들까지도 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희망까지도... 어느 정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267p,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중략-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